Pécs(피취) – 헝가리 남서부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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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숨겨진 보석 – 피취(Pécs), 다뉴브 강을 따라 문화 유산이 함께 흐르는 곳”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가량에 고대 로마인들에 의해 “소피아나에”로 설립되어, 게르만 민족에 의해서는 “퓐프키르셴”으로 알려진 오늘날의 피취는 아름답고 자그마한(그래도 여전히 헝가리에서는 대도시에 속한다) 대학 도시로써, 과거 공산 시절의 건축물의 잔재를 벗어나 오늘날 현대적인 대규모 관광지로 자리를 잡고있다. 지난 2000년도에 초기 기독교의 대규모 묘역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으며, 2010년도에는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된 곳으로써, 다음과 같은 다섯 곳의 관광명소로도 유명하다.

  • 초기 기독교 기념비: 고대 로마의 “소피아나에”의 일부로, 판노니아 지방의 8천~1만명이 거주하던 고대 고마 도시에 해당하던 지역이 현재 피취 도심 곳곳에서 그 흔적을 드러내고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초기 기독교 대규모 묘역”인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기록에 따르면 서기4세기 경에 조성된 묘역으로 보이며, 오늘날 유럽 전역에서 발견되는 기독교 묘역들 가운데 최대 규모로 알려져있다. 현재는, 총7곳의 분묘실이 “첼라 셉티코라”라는 명칭으로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으며, 그 중 방문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는 첼라 셉티코와 베드로-바오로 분묘실, 물잔들의 방 등이 있다. 대부분의 분묘실으 화려한 꾸밈이 없이 소박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일부의 경우에는 기하학적인 형상을 나타내는 프레스코 벽화가 남아있기도 하며, 이는 이 묘역이 조성되던 시절의 것으로 추정되며 고대 로마의 “카타콤”이라 불리던 지하 묘역들과 더불어 성베드로-바오로 분묘실에 드러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동정녀 마리아를 나타내는 것과 같은 여러 형태와 상징물 등에 있어서 유사한 모습을 나타낸다. 이 묘역의 가장 독특한 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2층으로 구성된 분묘실의 구조인데, 원래는 매장을 위한 구역(쿠비쿨룸)과 제사를 위한 구역(메모리아)의 두 가지 역할을 맡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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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ns.wikimedia.org ⓒ 2017)

  • 파샤 콰짐 사원(쟈미 성당): 메인 광장이라 할 수 있는 “세체니 광장”에 위치한 사원으로, 헝가리어로는 “쟈미”라고 불리지만, 현재는 카톨릭 성당으로 사용되는 독특한 건축물이다. 원래 지어진 곳에 그대로 남아있을 뿐만아니라, 파샤 콰짐에 의해 원래 성 베르톨드가 지었던 고딕 양식의 성당에 사용된 석재를 그대로 재활용하여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1940년대 초기의 재건축 과정에서 과거 투르크 양식이 복원되었으며, 성당/사원의 내부에는 16세기 무렵에 새겨진 것으로 보이는 쿠란의 구절들이 새겨진 프레스코 벽화들이 남아있어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내 또다른 광장인 “코르하즈(병원) 광장”에 위치한 무슬림 사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무슬림 공동체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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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abaKiss Photoblog ⓒ 2017)

  • 대성당: 피취의 대성당은 11세기 무렵, 당시 헝가리 2대 왕이었던 페테르 오르셰올로의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 합쳐진 형태로써, 과거 르네상스 시대와 투르크 침략기에도 그 일부가 창고로써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로코코 양식이나 고전주의 양식 등으로 재건축되기도 하였다가, 1880년대에 이르러 오늘날의 현대적인 모습을 다시 지니게 되었는데, 실내 장식의 대부분이 유실된 탓으로 대부분의 복구 과정에서는 과거 로마네스크 양식을 상상하여 복원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과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0년에 방문함으로써, 피취 대성당은 카톨릭 교회에 의해 정식으로 “바실리카 미노르(소단위 대성당)”의 명식을 공식적으로 부여받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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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abaKiss Photoblog ⓒ 2017)

  • 쵼트바리 박물관: 반드시 들러봐야 할 곳. 이 박물관에는 헝가리의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인 “티버더르 코스트커 쵼트바리”의 작품이 가장 많이 전시되고 있다. 약재상이기도 했던 쵼트바리는 27세때에 “라파엘로보다 더 위대한 화가가 될 것이다”라는 환영을 보게 됨으로써 스스로 미술에 몰두하게 되었다. 이후 점차 원래 직업이었던 약재상을 그만두게 되면서, 지중해로, 북아프리카로, 또 중동을 거쳐 다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떠났는데, 이를 통해 영감을 얻고 독특한 형체와 매우 강렬한 색체를 사용하여 “후기 인상파와 표현주의”의 흔적을 나타내게 되었지만, 스스로는 자신의 화풍을 구분할 것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쵼트바리는 살바도르 달리가 당시 자신의 뒤를 이어 세계 최고의 화가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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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pingredorger.wordpress.com ⓒ 2017)

  • 죨너이 박물관: 빌모쉬 죨너이와 그의 죨너이 도자기 공업에 관한 삶과 시대의 흔적이 담긴 도자기를 전시하고있다. 1870년대에 발달한 윤택이 흐르는 에오신 염료의 선홍빛과 더불어 화려한 색채감을 더하는 “고온강화요법”으로 인해 죨너이 도자기 공업은 1878년 파리 세계 엑스포에서 대상을 받음으로써 그 명성을 얻게되었다. 에오신 염료는 특별히 헝가리의 아르누보에 있어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예술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공공 건물과 일반 사유 건물 등에서까지도 건축 도료로써 매우 자주 사용되었다. 비록 죨너이 도자기 공업은 세계 대전, 가문의 위기, 1948년의 국유화 과정과 대량 도자기 생산 등으로 인해 그 부유함은 점차 자연스럽게 사라져갔으나, 오늘날에도 손으로 직접 붓칠을 하는 덕분에 죨너이 도자기 특유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 박물관에는 죨너이 가문의 유산으로 남은 많은 화려한 도자기들이 연대 순으로 전시되고 있으며, 피취 시의 산업 유산으로써도 설계도면이나 그 밖의 여러가지 문서 기록 등을 통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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